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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자연 물려받은 경북 봉화 여행
한적해서 음미할 수 있는 그 신선한 매력

지난 9일 경북 봉화군 춘양면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암석원’ 풍경. 김선식 기자
지난 9일 경북 봉화군 춘양면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암석원’ 풍경. 김선식 기자

경북 봉화는 타고났다. 천혜의 환경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봉화를 지난다. 태백산(남쪽), 구룡산, 옥석산이 봉화에 있다.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봉화로 흐른다. 하지만 빼어난 자연환경에도 사람 발길은 드물다. 강원도 산간지역, 지리산 일대에 견줘 여행지로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 탓에 교통과 숙박 등 시설은 부족하지만, 그 덕에 청정 자연은 풍부하다. 지난 8일 춘양면 우구치리를 걷다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 신선한 공기를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봉화엔 그 공기만큼이나 꽤 신선한 여행지들이 있다. ‘아기 소나무 숲’, ‘공부하는 절’, ‘백두대간 전망 카페’, ’공기 좋은 옛 금광 촌’, ‘전망 좋은 장수마을’ 등이다. 가는 곳마다 충분히 한적했기에 신선함을 음미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경북 봉화군 각화산 중턱에 있는 각화사 내부 전경. 김선식 기자
경북 봉화군 각화산 중턱에 있는 각화사 내부 전경. 김선식 기자

정말 조용한 곳을 찾는다면 ‘각화사’

‘출입금지. 입산 금지. 채취금지. 묵언 수행 중. 수행 정진 중. 정숙.’ 들머리부터 경내까지 적힌 안내문 요지들을 모으면 이렇다. 조심하고 조용해야 하는 곳이다. 깊은 산 맑은 공기가 주의력을 깨운다. 각화산(해발 1202m) 각화사(봉화군 춘양면 석현리)는 작고 고즈넉한 절이다. 일주문 현판엔 ‘태백산 각화사’라 쓰여 있다. 예로부터 봉화 쪽 태백산, 각화산 일대를 ‘봉화 태백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태백산 사고지’(5대 사고지 중 하나)를 각화사 근처에 두었다. 과거 스님 800명이 수도하는 절로, 국내 3대 사찰 중 하나였다고 전해진다. 그 전통 때문일까. 여전히 절은 ‘공부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김정순(56) 봉화군 문화관광해설사는 “각화사는 주로 공부하는 스님들이 있고 평소에도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가 없어 엄청 조용하다”고 설명했다. 바깥 화장실은 재래식이다. 화장실에 개수대도 딸려있지 않다. 앞마당 낮은 수도꼭지만 달랑 하나 있을 뿐이다.

각화사 화장실. 김선식 기자
각화사 화장실. 김선식 기자

울컥할 만한 우구치리 공기

우구치 마을(춘양면 우구치리)은 경북 최북단이다. 강원 영월 김삿갓면과 접해 있다. 마을을 둘러보다가 어느 임도를 걸었다. 옆 마을 서벽리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다. 길을 드나드는 차량은 거의 없다. 두 마을 사이엔 보다 크고 편한 길(지방도 88호선·춘양로)이 있다. 길가엔 금강송과 낙엽송(일본잎갈나무)이 쭉쭉 뻗어 있고, 간벌해 쌓아 둔 목재 더미만 동그라미를 그린다. 나비들은 사람 오는 줄 모르고 길바닥을 놀이터 삼는다. 임도에 접어든 지 15분 만에 스마트폰은 전파를 잡지 못해 먹통이 됐다. 여기선 공기를 느낀다. 호흡의 여운이 남달랐다. 여느 산속보다 몸속 깊이 박힌다고 해야 할까. ‘숨 쉬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다. 봉화엔 해발 1000m 넘는 산들이 10개 이상 있는데, 그중 우구치리에만 옥석산(해발 1244m), 구룡산(해발 1345.7m), 삼동산(해발 1179.8m)이 있다. 고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 임도. 이곳 공기는 남다르다. 김선식 기자
경북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 임도. 이곳 공기는 남다르다. 김선식 기자

이 마을은 쇠락한 금광 촌이다. 일제강점기부터 마을 금광은 수탈의 대상이었다. 마을은 금정 마을이라고도 불렸다. ‘금 우물’이란 뜻이다. 금이 있는 마을엔 한때 수천명이 모여들어 불야성을 이뤘다고 전해진다. 1930년대 한 종합일간지는 ‘우구치 금괴 절도 사건’을 보도하기도 했다. 현재도 옛 금광 터가 마을 들머리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남아 있다고 한다. 우구치리에서 서벽리로 가는 도래기재 근처에선 ‘금정수도’란 이름의 터널 입구를 볼 수 있다. 철창으로 폐쇄된 터널은 1920~30년 일본인들이 우구치리 광물 수송용으로 뚫었다고 한다. 터널 입구 10m 앞에서도 한기가 느껴진다.

우구치리 도래기재 주변 1920~30년 일본인들이 뚫은 금정수도. 당시 우구치리 금광에서 채굴한 광물을 수송한 터널로 전해진다. 김선식 기자
우구치리 도래기재 주변 1920~30년 일본인들이 뚫은 금정수도. 당시 우구치리 금광에서 채굴한 광물을 수송한 터널로 전해진다. 김선식 기자
경북 봉화군 춘양면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에서 트램을 타고 진입광장으로 돌아가는 길. 김선식 기자
경북 봉화군 춘양면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에서 트램을 타고 진입광장으로 돌아가는 길. 김선식 기자

그 카페, ‘백두대간 뷰’라고?

우구치리 옆 아시아 최대 규모(5179만㎡) 수목원이 있다. 2018년 5월께 문 연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이다. 전체 규모는 구룡산, 옥석산 등을 포함한 것으로, 중점적으로 가꾼 공간은 206만㎡(62만3150평)이다. 수목원은 고산지대 식물을 전시하고 보전한 암석원, 만병초원, 알파인 하우스 등 주제별 30여개 공간을 꾸몄다. 단연 인기 있는 곳은 한국호랑이(백두산호랑이) 한청과 우리가 있는 호랑이 숲이다. 한여름엔 나무가 우거진 숲길이 시원하다. 진입 광장부터 호랑이 숲까지 약 2㎞ 흙길로 이어진다. 숲길과 주제별 정원들을 구석구석 돌아보는 데는 편도 약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수목원은 트램도 운영한다. 트램을 타고 종점에서 돌아오는 길 풍경이 장관이다. 문수산 장엄한 산세를 배경으로 수십미터 위로 뻗은 금강송이 눈부시다. 수목원 방문자센터 2층 카페도 ‘전망 맛집’이다. 테라스로 나가면 옥석산~주실령~문수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 자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은 지난 18, 19일(주말) 하루 평균 697명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206만㎡(62만여평) 수목원에 한 시간 평균 77명가량이 입장한 셈이다.(1일 관람 시간 총 9시간) 주말에도 광활한 자연을 한적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기념품 가게에 전시한 호랑이 인형. 현장에서 문의한 결과 가격은 98만원. 김선식 기자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기념품 가게에 전시한 호랑이 인형. 현장에서 문의한 결과 가격은 98만원. 김선식 기자

전망 좋은 ‘장수마을’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에서 보이는 문수산 너머에 축서사가 있다. 신라 의상조사가 673년 창건했다고 알려진 축서사는 해넘이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갈까 말까 망설였다. 수목원에서 직선거리는 약 4㎞, 실제 이동 거리는 20㎞가량이다. 문수산을 돌아들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길은 꽤 신선한 드라이브 코스였다. 주실령을 지나 물야 저수지까지 한 번 감탄했다. 벚꽃이 없어도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였다. 물야면을 가로질러 개단리로 접어들면서 두 번 놀랐다. 길은 오로지 레드카펫처럼 문수산을 향해 뻗어 있다. 여기서 바라본 문수산은 수목원에서 본 문수산의 뒷면이다. 차를 타고 개단2리 ‘장수마을’ 비석을 지나며 ‘이 마을 어르신들은 매일 아침 집에서 문수산 해돋이를 보시겠구나’ 생각했다. 그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풍경이 끝날 즈음, 붉은 수피가 우람한 금강송 군락지가 축서사에 당도했음을 알렸다. 해넘이가 가까워져 오자 축서사 범종각에 앉아 있는 이들 넘어 멀리 소백산 자락은 짙어졌고, 대웅전과 아미타 삼존불을 에워싼 금강송들은 점점 붉어졌다.

경북 봉화군 물야면 축서사 가는 길. 김선식 기자.
경북 봉화군 물야면 축서사 가는 길. 김선식 기자.
축서사 대웅전 옆에서 내려다본 풍경. 김선식 기자
축서사 대웅전 옆에서 내려다본 풍경. 김선식 기자
경북 봉화군 춘양면 ‘춘양 양묘 사업소’ 앞 노지에서 자라고 있는 금강송 묘목들. 마을 주민들이 잡초를 제거하는 중이다. 김선식 기자
경북 봉화군 춘양면 ‘춘양 양묘 사업소’ 앞 노지에서 자라고 있는 금강송 묘목들. 마을 주민들이 잡초를 제거하는 중이다. 김선식 기자

‘숲의 시작’, 양묘 사업소

“모든 숲은 양묘 사업소에서 시작합니다.” 춘양 양묘 사업소(이하 ‘사업소’) 김선경(49) 소장이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 말엔 한국전쟁 이후 녹화사업 전진기지로서 ‘양묘 사업소’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 있다. 사업소(춘양면 의양리)는 남부지방산림청 관할 숲에 심을 묘목을 생산한다. 사업소 앞마당은 드넓은 논처럼 보인다. 가지런하게 심어 있는 식물은 금강송과 낙엽송 묘목이다. 씨앗 뿌린 지 1년6개월 된 ‘아기 나무’들이다. 노지 약 5만5002㎡(1만6638평)에 금강송 49만3100그루, 낙엽송 52만5000그루를 심었다. 아기 나무들은 한 번의 겨울을 더 이겨내고 두 돌이 되는 내년 3월 ‘어른들의 숲’으로 간다. 물론 나무들의 생존도 엄혹하다. 금강송은 키 16㎝ 이상(직경 2㎜ 이상), 낙엽송은 키 35㎝ 이상(직경 6㎜ 이상) 정도 되어야 숲으로 갈 수 있다. 김 소장은 “보통 이렇게 묘목을 키워 큰 나무가 되는 걸 모르고 숲에 씨앗을 뿌리는 줄 안다”며 “여기 견학 온 사람들은 다들 신기해한다”고 말했다. 봉화 춘양면에 가면 사업소 주차장이나 갓길에 차를 세우고 ‘아기 금강소나무 숲’과 ‘아기 낙엽송 숲’을 볼 수 있다. 이 또한 신선한 경험이 될 것이다.

봉화(경북)/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진입광장 주변 풍경. 김선식 기자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진입광장 주변 풍경. 김선식 기자
해질 무렵 축서사 앞마당. 김선식 기자
해질 무렵 축서사 앞마당. 김선식 기자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호랑이 숲’에서 사는 한국호랑이(백두산호랑이) ‘우리’. 김선식 기자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호랑이 숲’에서 사는 한국호랑이(백두산호랑이) ‘우리’. 김선식 기자

봉화에서 옥수수 술 한 잔?

경북 봉화에 찰옥수수로 술을 빚는 양조장이 있다. 소천면 현동리에 있는 ‘소천 양조장’이다. 소규모 단층 건물 자택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어 술을 달이고 창고에서 발효한다. 옥수수 약주인 ‘찰옥수수 엿술’과 함께 쌀 막걸리 ‘소천 장생 탁주’도 생산한다. 찰옥수수 엿술은 보리차처럼 노랗고 맑다. 달착지근한 맛을 톡 쏘는 탄산이 잡는다. 지난 1998년부터 22년 동안 옥수수 술을 빚어 온 정창덕(77) 대표에게 술 이야기를 들었다.

—옥수수 술 빚게 된 계기는?

“찰옥수수 엿술은 봉화 지역 토속주다. 산골이라 옥수수를 많이 심어서 남는 옥수수로 술을 빚어 먹었다. 쌀은 비싸서 쌀 대신 옥수수로 담가 먹은 거다. 이 집은 주인은 계속 바뀌었지만 80~90년간 계속 양조장이었다. 내가 1998년 양조장을 인수하기 4~5년 전 즈음 양조장 주인이 찰옥수수 엿술 생산 허가를 받았다. 그분한테 제조법을 배웠다.”

—옥수수는 어디서 조달하나?

“소천면에서 마을 사람들이 옥수수를 재배해 팔고 남은 걸 사들인다. 한 번 술 담글 때 옥수수 700㎏을 쓴다. 그러면 32ℓ 스테인리스 통으로 10통 나온다.

—제조 순서는?

“먼저 기계로 옥수수 알갱이를 턴다. 반나절 물에 불리고 빻아서 끓이고 식힌다. 맑은 술만 다시 달여서 단지에 넣는다. 달여서 졸아버린 옥수수 엿물이 거의 조청처럼 된다. 거기에 찐 찹쌀과 누룩을 섞어 담은 자루를 넣어 발효한다. 그렇게 보름 정도 발효한다.”

—전체 공정 기간은 얼마나 걸리나?

“한 달 정도 걸린다.”

—동네 사람들에게 인기 있나?

“동네 사람들에겐 익숙한 술이다. 예전 집에서 담가 먹던 엿술은 30도가 넘었다. 주민들은 예전같이 안 독하다고 별로 안 먹는다. 오히려 피서 와서 맛본 외지인들이 한 번 맛보고 찾는다.”

—어떤 맛이 매력인가?

“엿물 때문에 발효가 다 돼도 달착지근하면서 깔끔하다.”

김선식 기자

경북 봉화군 소천면 현동리에 있는 ‘소천 양조장’ 아궁이. 여기서 옥수수 엿술을 달인다. 김선식 기자
경북 봉화군 소천면 현동리에 있는 ‘소천 양조장’ 아궁이. 여기서 옥수수 엿술을 달인다. 김선식 기자

봉화 여행 수첩찾아가는 법 우구치리 숲길은 주소 ‘상금정길 219’ 앞 샛길로 빠지면 된다. 금정수도(터널)는 도래기재에서 서벽리로 내려오는 도로 왼쪽 정자를 찾으면 된다. 정자 옆에 철창으로 막아놓은 터널이 있다.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춘양면 춘양로 1501/054-679-1000)은 매주 화요일~일요일 운영한다. 하절기 입장시간은 오전 9시~오후 5시. 성인 입장료 5000원, 트램 편도 이용료 1500원. 각화사는 춘양면 각화산길 251. 축서사는 물야면 월계길 739. ‘닭실마을’(봉화읍 충재길 44)은 지난 500년간 안동 권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전통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논이 드넓다. 들머리에서 논 따라 약 400m 들어가면 ‘충재 박물관’과 정자 ‘청암정’이 있다. 마을에서 논을 가로질러 돌다리를 건너면 ‘석천정사’로 가는 약 500m 길이 있다. 금강송이 우거져 한여름에도 산책하기 좋다. 석천청사 앞 계곡까지 이어진다. 춘양 양묘 사업소(춘양면 의양로5길 23) 근처에 ‘억지 춘향 시장’이 있다. 시장 안팎에 농협 하나로 마트와 식당들이 있다. 소천 양조장 ‘찰옥수수 엿술’은 훈이 마트(소천면 소천로 1276/054-672-7603)에서 판매한다. 숙소 국립 청옥산 자연휴양림과 문수산 자연휴양림에 캠핑장과 실내 숙박시설이 있다. 전국 자연휴양림 통합 예약 사이트 ‘숲나들이’(foresttrip.go.kr)에서 예약할 수 있다. 만회고택(봉화읍 바래미1길 51/054-673-7939)과 만산고택(춘양면 서동길 21-19/054-672-3206)은 한옥 객실에 머물 수 있는 곳이다. 김선식 기자

경북 봉화군 봉화읍 ‘닭실마을’ 전경. 김선식 기자
경북 봉화군 봉화읍 ‘닭실마을’ 전경. 김선식 기자
‘닭실마을’에서 석천정사로 가는 길엔 금강송이 우거져 있다. 김선식 기자
‘닭실마을’에서 석천정사로 가는 길엔 금강송이 우거져 있다. 김선식 기자

[스포츠조선닷컴 김수현기자] ‘악(樂)인전’에 ‘트바로티’ 김호중이 출격한다. 특히 김호중은 송가인과의 깊은 우정을 뽐냈다고 해 관심을 모은다.

오는 7월 25일(토) 방송되는 KBS 레전드 음악인 클라쓰 ‘악(樂)인전'(연출 박인석) 마지막 회에서는 ‘트바로티’ 김호중이 출격한다. 그는 송창식, 송가인, 이상민, 함춘호, 김숙, 김요한과 함께 진솔한 음악 이야기와 감성 충만한 역대급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해 기대를 높인다.

이 날 스튜디오에 김호중이 모습을 드러내자 송가인은 찐 웃음을 폭발시켰다. 두 사람은 모두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출신이지만, 같이 방송을 해 본 적이 없는 사이. ‘악(樂)인전’을 통해 방송 최초로 동반 출연을 하게 된 두 사람은 현실 남매 같은 절친 모드를 자랑했다. 김호중은 “송가인 때문에 출연하게 됐다”면서 “성별이 달라 누나라고 부르지. 사실은 큰 형님이다”라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더욱이 ‘악(樂)인전’의 찐 팬이라고 밝힌 김호중은 “방송이 시작하면 송가인의 댄스를 찍기 위해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있는다”면서 송가인의 댄스 실력을 깨알 디스(?)해 현장을 또 한번 웃음바다로 만들었다는 전언.

동시에 김호중은 송가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성악 전공자인 김호중은 송가인의 적극적인 권유로 트로트를 시작하게 됐다고 전하며 “나에게 용기를 준 은인”이라고 말해 끈끈한 우정을 뽐냈다는 후문. 나아가 김호중과 송가인은 방송 최초로 함께 음악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여 현장을 박수 갈채를 받았다고 해 이들의 첫 듀엣 무대에 기대감이 상승한다.

그런가 하면, 김호중은 “송창식과 함춘호를 너무 뵙고 싶었다”며 이들의 팬임을 밝혀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와 함께 김호중이 송창식의 팬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운명적인 이유가 공개돼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고. 이에 두 사람의 첫 만남에도 관심이 치솟는다.

한편 KBS 레전드 음악인 클라쓰 ‘악(樂)인전’은 ‘음악인의 이야기’란 뜻으로,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한 많은 음악 늦둥이들이 레전드 음악인을 만나 새 프로젝트를 실현해가는 과정을 담은 리얼 버라이어티 음악 예능. 오는 7월 25일(토) 밤 10시 55분에 ‘악(樂)인전’ 마지막 회가 방송된다.홀짝게임

[이투데이/한은수]

(출처=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방송캡처)

故 구하라의 친모가 딸 구하라와의 관계에 대해 입을 열었다.

23일 JTBC ‘이규현의 스포트라이트’에서는 ‘故 구하라와 두 개의 재판’을 주제로 친오빠 구인호 씨와 생모의 인터뷰가 공개됐다.

이날 구호인 씨는 “우리의 성장 과정에 엄마는 없었다”라며 “생모에게 동생의 재산이 간다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었다”라고 재산 상속 분할 소송의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故 구하라의 친모는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닌 3년 전 구하라가 먼저 자신을 찾아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가출 후 8년 만에 이혼을 요구한 것은 자신의 외도 때문이 아닌 남편이 직장까지 찾아와 식칼로 죽이겠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친모는 3년 전 구하라와 함께 찍은 사진을 증거로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구호인 씨는 “그 당시 동생이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그 원인이 생모였다. 찾아가 보라고 권유했기에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故 구하라와 친모의 사진을 찍어준 구하라의 지인은 “두려워하면서도 설레했다. 구하라는 엄마가 따뜻하게 안아주고 대화하는 걸 원했는데 부를 수 있는 친척을 다 불렀더라”라며 “하라가 연예인이라 자랑하려고 그랬던 것 같다. 잔치 같았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편 구하라는 지난 2019년 11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이후 친오빠 구호인 씨는 구하라의 재산 분할을 두고 어머니와 소송 중이다. 또한 구호인 씨는 친모를 상대로 양육비 청구소송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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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대전, 유현태 기자 이성필 기자] “마지막 월드컵이 35살 때였어요. 사실상 공격수로서는 은퇴였어요.”

대한민국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인정받던 황선홍(52) 대전 하나시티즌 감독에게 1994 미국월드컵은 상처로 남았다. 그 이후 어떤 활약을 펼쳐도 고칠 수 없는 깊은 상처, 같은 해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한일전에서 3-2 역전승을 이끌고 대회 득점왕까지 차지했지만, 월드컵의 실패는 그대로 남았다.

당시 축구 선수 황 감독의 나이는 20대 중반. 한국 축구의 기대를 고스란히 젊어지기에는 너무 젊었다. 선수 생활이 창창했지만, 실패는 아팠고 심각하게 미래를 고민했다. 결론은 월드컵에서 명예 회복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월드컵이 안긴 아픔은 월드컵으로 자가 치유하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네

월드컵이 안긴 상처는 오히려 황 감독이 축구에 매진하는 계기가 됐다. 월드컵을 한 해 앞뒀던 1997년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재활에 매달렸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에 월드컵 첫 승리를 안기겠다는 각오였다.

“질타를 많이 받았다. 정신적으로 약하거나, 오기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으면 포기했을 수도 있었어요. 엄청난 시련이었으니까요. 길을 다니면 고개를 들지 못했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는 축구에 엄청난 관심이 있었어요. 두문불출하며 집에서 몇 날 며칠을 생각해도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것 말고는 없더라고요. 최선을 다해서 돌아간 ‘팬심’을 돌려놓는 것뿐이었어요. K리그에서 8경기 연속 골을 넣고 골든볼을 받아도 안 되더라고요. 월드컵에서 실패하면 월드컵에서 만회해야 했으니까요.”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1년 4개월 동안 독일과 한국에서 재활했어요. 독일에서 순리대로 잘했지만, 한국에 돌아온 뒤 포항에서 혼자 했는데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절제했고 일정대로 알아서 했어요. 목표는 딱 하나. ‘월드컵에 나가겠다’는 분명하고도 정확한 목표가 있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간절하게 준비했던 프랑스월드컵은 황 감독에게 또 다른 아픔으로 남았다. 1998년 6월,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치른 한중 정기전에서 황 감독은 상대 골키퍼와 충돌하며 무릎을 크게 다쳤다. 최종 엔트리에 속해 프랑스까지 날아갔지만, 출전 불가였다. 명예회복을 위해 칼을 갈았으나 불운이 그를 덮쳤다.

“1990 이탈리아월드컵이야 아무것도 모르고 나가서 뛰었어요. (미국월드컵은) 정말 팀의 주축이었는데 전성기 시절 해보고 싶었던 때는 다 말아 먹었고요. (프랑스월드컵은) 31살이었는데 정말 (기량이) 무르익고 축구도 좀 보이고 옆 사람도 좀 활용하고, 최용수(현 FC서울 감독)와 투톱도 가능했어요. 기대를 갖고 대회를 준비했는데 중국전에서 다치면서 뛰지 못했어요. 월드컵은 나와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16강 좌절의 아픔을 안고 귀국한 그해 7월, 세레소 오사카 유니폼을 입고 일본에 진출했다. 수원 삼성을 거쳐 가시와 레이솔(일본)에서 유상철, 홍명보와 함께 뛰었다. 세레소에서는 1999년 J리그 득점왕도 차지했다. 그래도 마음속에서 덜지 못한 부채, 월드컵에서 한국에 첫 승을 안기겠다는 의지는 그대로였다. 그래서 당시 축구 선수로서는 환갑을 넘었다는 35살의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다렸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했어요. 해외에 나가야 하나, 아니면 그만둬야 하나 말이죠. 자존심이었던 것 같아요. 일본에서 뛰면서도 은퇴는 한국에서 하겠다고 했거든요. 일본에서 득점왕도 하고 좋았던 시절이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월드컵’이라는 부채가 있었어요.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서 인식을 바꾸고 은퇴하겠다고 말했어요. 1998년에는 성공하지 못해서 1994년의 빚을 갚지 못했다고 생각했거든요. 어쨌든 목표는 하나였어요. 지금이 좋아도 만족하지 못했으니까요.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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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히딩크가 부를 것이라 믿었던 황새, 스스로 강해졌다

황 감독의 현역 시절을 두고 무겁게 압박해오는 관심과 그에 따른 짙은 그림자가 공존했다고 평가한다면 과언일까. 큰 기대가 있었지만, 잦은 부상과 심리적 부담 때문에 원하던 결과를 내지 못했다. 물론 월드컵이라는 기준에서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시선 속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한국 축구 구세주’로 등장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처음부터 황 감독을 대표팀에 호출한 것은 아니다. 2001년 1월 히딩크 감독이 부임 후 약 5개월여 소집 명단에 들지 못했다. 2001년 5월 카메룬과 친선 경기를 앞두고서야 대표팀에 부름을 받았다.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하는 동안에도 조급해지지 않았다. 황 감독은 “자신감이다. 저 자신에 대한 확신은 가지고 있다. 내 능력을 믿는 것도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일본에 있을 당시에 월드컵이 오기 전 저를 한 번은 부를 것이라고 확실하게 생각했어요. 몸 관리도 잘했고 경기장에서도 무언가 더 보여주려고 했어요. 핌 베어벡 코치도 보러 왔었어요. 대표팀에는 선수들이 들락날락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부르지 않더군요. 그래도 틀림없이 한 번 불려갈 것이고 그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월드컵에 갈 수 있을지가 결정된다고 봤어요.”

‘태극마크’를 다시 한번 가슴에 단 뒤, 황 감독은 월드컵만 바라봤다. 간절한 마음 못지않게 긴장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잔디 위에서 경기력을 위해 구슬땀을 쏟으면서도 부상을 피하고자 조심했다. 1990, 1994, 1998년으로 이어진 3번의 월드컵에서 실패를 겪으면서 얻은 교훈들 덕분이었다.

“마지막 월드컵이 35살이었어요. 사실상 공격수로서 은퇴하는 나이였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했던 게 마음도 편안하고 의지도 다지고 제어하면서 좋은 결과를 낸 것 같아요. 반드시 해야겠다는 의지가 있어서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2002월드컵을 준비하면서 걱정했던 것은 부상이었어요. 책도 많이 보고 음악도 많이 들었어요. 불안감 제어를 위해 굉장히 노력했는데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겠더라고요. (폴란드전까지) 1주일, 6일, 5일 줄어가는데 훈련하다 발목이라도 삐끗할까 너무 두려운 거죠. 마인드컨트롤을 정말 많이 했어요.”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치른 잉글랜드(1-1 무), 프랑스(2-3 패)와 평가전을 치르고 본선으로 향했다. 4강 신화는 채 시작되기도 전. 한국 대표팀의 목표는 우선 ‘눈앞’에 있었다. 월드컵에서 단 한 번도 해내지 못했던 비원의 첫 승이었다. 황 감독이 1988년부터 무려 15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그토록 원했던 목표였다.

“2002년이 (1994년보다) 더 절실했어요. 경기 전 인터뷰를 하는데, 웬만해서는 ‘내일 꼭 골을 넣겠습니다’라고 말을 하지 않아요. 보통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폴란드전을 앞두고 ‘내일 기회가 오면 반드시 골을 넣겠습니다’라고 인터뷰한 기억이 있어요. 1994년보다 훨씬 강했으니까요. 저 스스로도 강해져야 했고요.”

“그때는 첫 승이 하고 싶었다. 2002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은퇴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배수의 진을 치고 치렀어요. 한 경기, 한 경기가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게 마지막이 될 수 있었어요. 내가 득점하는 것도 중요했고, 승리하면 최고였을 거에요. 그렇지만, 그동안 1승도 못했으니까. 1승만이라도 내 힘으로 하게 하고 은퇴하고 싶었거든요. 다행히 득점도 하고 1승을 했으니까 더는 바랄 수 없는 피날레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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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원(悲願)의 월드컵 첫 승, 절실했던 황새의 발이 만들었다

폴란드전은 한국의 월드컵 성공 여부를 가늠할 경기였다. 잉글랜드, 프랑스를 상대로 선전했어도 본선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기대감과 부담감, 두려움까지 온갖 감정이 범벅이 됐을 경기다. 하지만, 팬들의 뜨거운 응원 앞에서는 그 많은 감정이 고스란히 책임감으로 돌아왔다. 뜨거운 팬들의 응원에 보답해야겠다는 각오였다.엔트리파워볼

“준비 운동을 위해 운동장으로 나가니 관중이 드문드문 있더군요. 운동을 마치고 나서 유니폼을 갈아입고 나가는데…와. 완전히 빨갛고 옆에 사람 이야기도 안 들리더라구요. 애국가가 나오고 태극기가 올라가는데, ‘아, 운동장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지배했어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 못 이기면 못 걸어 나간다는 생각. 가슴에서 이만한 게 올라왔어요.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정말 강했거든요.”

황 감독은 폴란드전을 통해 한국의 월드컵 도전사(史)에서 중요한 골 중 하나를 넣었다. 월드컵 첫 승 경기에서 얻은 선제골이자 결승골이 된 골, 전반 26분 왼쪽 측면에서 연결된 이을용(현 제주 유나이티드 수석 코치)의 크로스를 골문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이)을용이를 제가 얼마나 원망했는지 몰라요. 그 짧은 시간, 슬로비디오 같더라구요. 눈이 딱 마주쳤는데 제가 앞으로 빠져나갔거든요. 대인방어 하던 수비가 나를 따라오지 못했어요. 느낌으로 알았죠, (이을용과) 눈이 맞았고 (볼이) 올라올 것이라는 걸요. 그런데 잘 주면 잘 슈팅하겠는데 정말 애매하게 왔어요. 튕기기도 애매하고, 바로 슈팅하기도 애매했죠. 물기가 있으니 그라운드에 튕기면 뜰 것 같았어요. 그대로 발에 대는 것이 조금 더 나았는데 가까스로 댄 거죠. 볼이 이렇게 휘어져 들어가는데, 예지 두덱 골키퍼가 딱 뜨는데 골대 사이로 지나가는 게 보이더라구요. 그게 정말 좋았죠.”

황 감독은 월드컵에서 2골을 기록했다. 1994년 독일전 골은 너무도 뒤늦게 터져 기쁨을 나눌 새도 없었지만, 폴란드전의 귀중한 골은 달랐다. 득점 뒤 냅다 벤치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박항서(현 베트남 대표팀 감독) 코치에게 안겼다. 굳이 벤치로 달려 감독이 아닌 코치를 얼싸안은 이유는 ‘원 팀’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골을 넣었을 때 감정은) 말로 표현이 안 된다. 코너 깃발로 가려고 하다가 아내와 약속한 것도 있고, 벤치로 가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경기를 못 뛰는 선수들, 윤정환이나 이런 선수들이 있었어요. (주변 선수들이) 잡으러 오니까 막 비키라고 (손짓) 했거든요. 한 70m 정도 됐는데 뛰어가서 안겼죠. 선참으로서 같이 느끼면서 힘을 받기를 원했어요. 골을 넣으면 항상 벤치로 가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힘들어서 3~4분여 정신 차리지 못했어요.”

“감독님은 늘 거기(벤치)에 계시는 분이었어요. 팀의 중심을 잡고 모든 것을 하시는 분이었죠. 경기에 참여하지 못하면 조금은 소외당하게 되거든요. 경기에 뛰는 우리가 주축이지만, 같이 고생하는 이들 아닌가요. 코치님들도 마찬가지였어요. 감독님이 주이고 코칭스태프는 약간 소외당하는 처지 아닌가 싶었어요. 그래서 분위기를 일신하고 싶었죠. 우리는 하나다, 뭐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물론 박 감독의 청탁처럼 느껴지는(?) 묘한 부탁도 있었다.

“사실 히딩크 감독님은 선발 명단을 미리 알려주지 않아요. 경기 당일 알려줬어요. 박 선생님이 전화가 와서 ‘선발로 나가니까 몸 관리를 잘하라’고 하시더군요. 끊으려는데 농담조로 ‘골 넣으면 나한테 오라’고 하셨어요. 벤치로 가다 보니까 ‘박쌤’이 보였는데 참 좋았어요. 그때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아버님이 1996년에 돌아가셨는데, 하늘을 보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어요. 이기고 나서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거든요. 제가 정말 절실하고,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모든 것을 쏟아부으면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확신했거든요. 지금도 아주 중요한 순간, 포항 스틸러스, FC서울에서 우승했던 그 마지막 순간, 이겨야 우승하는 어려운 순간에, 그게 교훈이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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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전 연장 전반 11분, 부폰의 선방이 없었다면…안정환의 골든골은 없었다?

폴란드전 승리는 황 감독 개인을 넘어 대표팀 전체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간 한국 축구를 옥죄고 있던 ‘월드컵 첫 승’이라는 굴레가 사라지자 한계가 없어진 것, 이제 어떤 팀을 만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기세를 살려 한국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연파하며 4강에 오르는 신화를 썼다.

“(안)정환이도,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도, (유)상철이도 그렇고. 주축들이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싶었어요. 다 같은 세대니까요. 저나 홍 전무는 조금 더 책임감이 심했어요. 대표 선수를 16년이나 했는데 월드컵에서 1승도 못했다니, 이대로 은퇴하면 후배들한테 해줄 말도 없었거든요. 16강은 둘째치고 1승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우리는 월드컵 경험이 많았어요. 나갔다가 실패하고를 반복하니 반신반의했구요. 불안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될 수 있어’라고 생각하다가도 다음 날에는 또 불안하더라고요. 선제 득점한 경우가 많지 않았으니까요. 선제골 넣고 2-0으로 이긴 것이 굉장히 큰 힘이 되더군요. ‘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팀에 퍼졌어요. 다음 경기부터는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었죠.”

눈부신 성공이었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도 있게 마련이다. 황 감독은 득점 행진을 이어 가지 못한 것을 정말 아쉬워했다. 황 감독은 기세를 타면 말리기 어려운 유형의 공격수였다. 몰아치기에 능하다는 뜻이다. 1995년 K리그에서 8경기 연속 골을 기록한 것은 그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황 감독은 “한 번 골을 넣으면 계속 흐름을 이어 간다”라고 자랑(?)했다. 미국과 조별 리그 2차전에서는 원했던 페널티킥을 차지 못했고, 이탈리아와 16강에서는 1-1 동점으로 흘러가던 연장 11분 미드필드 오른쪽에서 얻어 시도한 재치 있는 프리킥이 잔루이지 부폰(유벤투스) 골키퍼의 손에 막혔다. 경기장 조명에 공이 숨는 불운까지 겹쳤다.

“부폰, 아! 그건 원래 막지 못하는 거였어요. 정말 약하게 찼는데, 조금 더 세게 찼으면 막지 못하는 거였어요. 저는 원래 (세트피스) 키커가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차겠다고 벤치에 말했거든요. 그 이후 한 번 더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아쉬웠어요. 미국전에서 페널티킥을 제가 차고 싶었어요. 벤치에는 제가 차겠다고 했어요. 저는 한 번 넣으면 계속 넣거든요. 그런데 벤치에서 다른 사람(이을용)이 차라고 하더라구요. 한 번 더 골을 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있었어요. 부상 때문에 포르투갈전을 뛰지 못했고 이탈리아전에 나섰어요. 핑계 같지만, 라이트에 볼이 숨었어요. (후반 막판 기회에서) 크로스가 오는데 가슴 트래핑을 해놨어야 했어요. 볼이 떴으면 오버헤드킥을 하던가 어떤 식으로든 슈팅해야 했어요. 하필 볼이 라이트에 숨어서 정확히 못 댔죠. 한 골은 더 넣었어야 했어요. 그리고 (연장 전반) 그 프리킥은 감아 차는 척하면서 (수비벽)아래로 킥을 했죠.”

황 감독은 월드컵 첫 승을 선수 생활 하는 동안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꼽았다. 월드컵 4강에 오르는 그 순간은 차마 생각지도 못했겠지만, 승리를 얻겠다는 마음은 선수 생활 내내 수없이도 그렸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는단다. 축구 선수의 인생을 전부 바치고 난 뒤, 모두가 늦은 것이 아니냐는 의문의 눈빛을 보낼 때 간절히 원했던 목표를 이뤄 그렇다.

“(첫 승이) 살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고 감독을 하면서도 그런 순간들을 어떻게 준비하고, 경기했고 이런 것들이 기억이 나요. 감독으로서 어려운 경기를 앞두고 있으면 그때와 같은 마음으로 준비를 해요. 설사 실패를 하더라도 말이죠. 그래도 확률은 상당히 높다고 봐요. 절실하게 하고 집중하고 준비하면 이뤄진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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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인정하는 드라마틱 축구 인생

황선홍. 한국 축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역대 A매치 출전 횟수로는 12위(103경기)에 올라 있고, 득점 부문에서는 ‘차붐’ 차범근(67) 전 수원 삼성 감독(136경기 58골)에 이어 역대 2위(50골)를 기록 중이다. 월드컵 4강이라는 빛나는 성과도 붙어 있다.

하지만, 그의 축구 인생을 되짚어보면 기쁨보다는 고난의 순간이 많았다. 부상도 잦았고 팬들의 환호만큼 비난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을 축구 인생, 그래도 황 감독은 현역 시절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성공은 물론이고 고난의 순간마저도 사람으로서 성장하는 소중한 경험이었으므로.

“드라마틱해요. 저는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살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됐어요. 우여곡절도 많았고 힘들었어요. 잘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았으니까요. 지도자 생활하면서도 똑같지만, 축구를 하면서도 힘들었어요. 삶이란 다 그런 것 같아요. 꼭 축구를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어려운 일도 있을 것이고, 그만둘 때도 있고, 그런 것들을 축구에서 밟아온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단단해지고 어려운 일을 겪어도 차분하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한테는 소중한 추억이자 경험이니까요.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준비했던 것이 결실을 봤으니 좋았다고 생각해요.”

한국 공격수의 계보를 이었던 황새였기에 환희와 고통은 공존했다. 어쩌면 공격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순간부터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으로 쓰라면 ‘공격수개론’ 정도는 충분히 낼 수 있을 정도로.

KBO리그 사상 처음으로 사라진 올 시즌 올스타전과 올스타 휴식기 일주일 휴식에 큰 도움 받았던 투수진, 사령탑은 미래까지 바라본 과부하 우려전반기 마운드 관리 여부에 따라 8월 중순부터 승부처가 될 수도장마 우천 취소라도 시즌 막판 일정만 더 빡빡해져, 부상자 최소화에 순위 싸움 판가름 

올스타 휴식기가 없어졌기에 우천 취소 여부에 팀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사진=두산)
올스타 휴식기가 없어졌기에 우천 취소 여부에 팀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사진=두산)

 [엠스플뉴스] 올 시즌 KBO리그는 예년과 다르게 올스타전과 더불어 올스타 휴식기가 사라졌다. 144경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선 사라진 도쿄올림픽 휴식기에 나머지 경기 일정을 모두 채워 넣어야 했던 까닭이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올스타 휴식기는 일주일로 늘었다. 전반기 쉼 없이 달린 선수들, 특히 투수진은 어깨를 식힐 수 있는 긴 휴식기가 보약이었다.  전반기 동안 피로가 계속 쌓이면 하루 이틀 쉰다고 좋아지는 게 아니다. 그런데 올스타 휴식기가 일주일로 늘어나고 푹 쉬니까 몸과 정신을 다 재충전했다. 다른 투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길어진 휴식기 덕분에 후반기부터 좋은 몸 상태로 마운드에 올라갈 수 있었다. 마음도 편안했다.  지난해 일주일로 늘어난 올스타 휴식기를 경험한 한 투수의 말이다. “사라진 올스타 휴식기, 내년과 내후년에 악영향 미칠 수도”

키움 손 혁 감독은 올스타 휴식기가 사라진 여파로 마운드 전력 과부하에 대한 큰 우려를 내비쳤다(사진=엠스플뉴스)
키움 손 혁 감독은 올스타 휴식기가 사라진 여파로 마운드 전력 과부하에 대한 큰 우려를 내비쳤다(사진=엠스플뉴스)

 올 시즌 올스타 휴식기에 사라진 점과 관련해 키움 히어로즈 손 혁 감독은 투수진의 과부하를 먼저 우려했다. 키움은 7월 23일 기준 올 시즌 불펜진이 가장 많은 이닝(256이닝)을 소화한 팀이다. 불펜진 등판 횟수도 롯데 자이언츠(247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등판(246회)을 기록 중이다. 시즌 초반 선발진이 부상와 부진으로 무너지며 불펜진에 많은 부담이 쏠린 까닭이다. 

7월 23일 기준 올 시즌 KBO리그 10개 구단 불펜진의 이닝 소화와 등판 횟수(표=엠스플뉴스)
7월 23일 기준 올 시즌 KBO리그 10개 구단 불펜진의 이닝 소화와 등판 횟수(표=엠스플뉴스)

 손 감독은 올스타 휴식기가 없는 상황이 올 시즌뿐만 아니라 내년과 내후년까지 마운드 과부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바라봤다. 휴식이 없는 144경기 진행은 리그 투수진에서 부상자가 속출하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단 뜻이다. 손 감독은 “분명히 올스타 휴식기가 없다는 점이 투수진에게 큰 영향을 끼칠 거다. 올 시즌 당장 데미지가 없더라도 내년 시즌이 가장 많은 부상자가 나오는 시즌이 될 수도 있다. 내년 시즌 개막이 다소 늦춰진다면 상관없겠지만, 계속 빡빡한 일정이 이어진다면 리그 모든 팀의 마운드에 과부하가 있을 거라고 본다”라며 우려를 내비쳤다. 절대적인 팀 불펜진 이닝 소화 숫자는 높지만, 손 감독은 불펜진의 3연투를 가장 경계하는 사령탑이다. 실제로 올 시즌 키움 벤치는 리그에서 유일하게 단 한 차례의 3연투도 허락하지 않았다.   3연투보단 이틀 던지고 이틀 쉬고 이틀 던지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만약 그렇게 일주일에 네 차례 공을 던지면 그다음 주엔 최대 세 번만 등판하도록 관리하는 방향이다. 사실 감독은 승리를 위해 투수를 계속 쓰고 싶다. 하지만, 내가 28살에 야구를 관둬보니까 야구장 바깥에선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걸 알았다. 마운드 위에서 오랫동안 야구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최대한 투수들을 아끼며 승리하도록 노력하겠다.  손 감독의 말이다. 두산 베어스 김태형 감독은 올스타 휴식기가 사라진 점이 후반기 체력적인 변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바라봤다.  김 감독은 “올스타 휴식기 때 일주일 동안 푹 쉬는 거랑 훈련과 경기를 하러 나왔다가 우천 취소되는 거랑은 다른 문제다. 가을 늦게까지 많은 경기가 몰려 있어 변수가 많다. 부상자가 많은 팀은 뒤쪽으로 경기가 밀리는 게 좋아도 현재 휴식기 없이 몇 경기 우천 취소되는 건 팀에 큰 도움이 된다고 볼 순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전반기 투수력 아낀 팀이 8월 중순 승부처에서 치고 나갈 것”

롯데 허문회 감독은 전반기 투수력을 아낀 팀이 8월 중순 승부처부터 치고 나갈 수 있다고 바라봤다(사진=엠스플뉴스)
롯데 허문회 감독은 전반기 투수력을 아낀 팀이 8월 중순 승부처부터 치고 나갈 수 있다고 바라봤다(사진=엠스플뉴스)

 롯데 자이언츠 허문회 감독은 사라진 올스타 휴식기와 관련해 승부처를 떠올렸다. 허 감독은 나름대로 전반기 투수력을 아낀 만큼 8월 중순부터 9월까지 승부를 걸 기간이라고 바라본다. 허 감독은  올스타 휴식기가 없어졌기에 결국, 8월 중순부터 시작하는 확장 엔트리 싸움에서 순위 싸움이 판가름 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그때도 마운드 컨디션이 괜찮은 팀이 확실히 치고 올라갈 거다. 8월과 9월 사이가 승부처다. 전반기부터 투수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승부가 걸려있다 라고 힘줘 말했다.  허 감독은 7월 21일 문학 SK 와이번스전(7대 8 패배)에서 나온 마무리 김원중의 블론세이브를 언급하며 관리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김원중은 9회 말 제이미 로맥에게 끝내기 2점 홈런을 맞고 패전 투수가 됐다.  허 감독은 “마무리 투수로서 시즌 도중에 몇 차례 나올 수 있는 경기”라면서도 “그런 상황이 안 나오게 관리를 해주는 건데 김원중의 경우 등판 이틀 전 경기(19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8회 2사부터 나와 4타자를 상대한 여파가 어느 정도 있었다고 본다”라고 짚었다. 허 감독의 관점에선 김원중의 블론세이브가 올스타 휴식기가 없는 올 시즌 마운드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한 계기였다.  올 시즌 올스타 휴식기는 사라졌지만, 7월 내내 찾아오는 장마 전선이 선수들에게 달콤한 휴식을 줄 수도 있다. 당장 22일엔 대전 경기(KIA 타이거즈-한화 이글스전)를 제외한 모든 경기가 우천 취소됐다. 23일엔 시즌 두 번째로 5경기 모두 우천 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다음 주에도 기상청의 예보에 따르면 전국적인 장마 전선 형성이 이뤄질 전망이다. 장마로 예상보다 긴 휴식기를 얻을 수도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특정 팀은 우천 경기가 더블헤더로 편성되는 등 10월에 더 험난한 일정을 받아들여야 할 수 있다. 포스트시즌 일정도 11월 중순을 넘어 끝날 수 있기에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의 부상 위험성은 더 높아진다. 쉬지 않고 달려야 할 KBO리그 팀들에겐 부상자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가 됐다. 사라진 올스타 휴식기로 빡빡해진 일정을 어떻게 슬기롭게 넘기느냐에 시즌 후반 순위 싸움이 판가름 날 전망이다.  파워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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